나의 작은글

🌫 시간의 얼굴

leopardx 2013. 7. 3. 22:30

 

 

시간은
비늘처럼 잘게 쪼개진 은빛 결을 따라
조용히, 그러나 지울 수 없게
내 곁으로 스며든다.

지나온 날들의 온도는
손끝에 머무는 미지근한 바람처럼
흔들리며 떠돌고
세상은 그 위에서
아주 가볍게 웃음의 잔결을 그려 올린다.

변화의 뾰족한 모서리에 닿을 때마다
시간의 아픔은
축축한 그림자처럼 가라앉아
심장 깊은 틈에
주홍빛 울음을 비쳐낸다.

물결을 흔드는 비늘빛처럼
시간은 언제나 다가와
산등성이의 어둔 숨결을 지나
소리 하나 남기지 않고
깨진 빛처럼 사라진다.

한낮의 뜨거움에 말라붙은
이름 모를 들꽃 한 송이—
그 마지막 향기만 아픔이 되어
황혼의 끝자락으로 흩어진다.

멈출 수 없기에
더 짙어지는 이 흐름.
영혼의 얇은 막도 남기지 않은 채
오늘도 희미한 빛살을 흘리며
끝없이, 끝없이
사라져간다.